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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를 다녀오다

등록 일자 :2014-05-15 오전 10:00:00 수정 일자 :2014-05-15 오전 11:06:00


백령도를 다녀오다

 

임대성 은 37년전 군복무시절 백령도에서

 

나는 37년전 군복무를 백령도에서 하였다.

부산에서 어렵게 대학을 다니던 시절, 군복무를 먼저 하고 복학하여 학업을 마친 후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주변의 충고를 듣고 1977년 2월에 해병대에 지원입대 하였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군복무 시절이 눈에 훤하다.

그 당시 사병 월급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근무지가 최전방이라는 이유로 생명수당이라는 것이 포함된 봉급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서해상의 최북단으로 인천에서 군함을 타고 하루 밤낮을 뱃멀미를 하며 도착한 곳이 백령도였다. 도착하자마자 보게 된 바다 건너 북녘 땅에 새겨진 ‘속도전’이라는 글귀를 보면서 코앞에 적군과 대치하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줄줄 외웠던 백령도의 역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인천에서 120마일 떨어진 서해고도 백령은 심청의 전설을 담은 인당수를 8마일 북으로 바라보며 자리 잡은 47㎢의 섬으로 우리나라 도서 중 14번째로 꼽히는 곳입니다. 이상” 40여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외우고 있는 것을 보면 망망한 북녘 땅 황해도 해주를 바라보면서 외우고 또 외웠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당시 너무 배가 고파서 식기를 씻으며 돼지비계를 눈치 보면서 주워 먹었던 기억도 나고 졸병시절 영하 20도가 넘는 가운데서도 진지에 둔 105밀리 무반동총으로 사격훈련을 받던 기억도 새롭다. 중대장이 연병장에 중대원들을 모아놓고 큰 목소리로 외치던 호기어린 연설도 들은 기억이 난다. “나에게 잘 훈련된 해병 3명만 다오, 김일성의 목을 따고 나도 죽겠다.” 아직도 쩌렁쩌렁한 그 목소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군에 입대할 때 어머님이 버스를 타고 떠나는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훈련소에 입소 후 3일 만에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가기 전에 연병장에 드러누워 ‘좌로 굴러 우로 굴러’ 했던 얼차려며 목소리가 작다고 혼이 나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군대란 이런 곳이구나라고 실감을 하며 부모님이 그리워 눈물을 훔쳤던 기억도 난다. 벌써 37년이 지난 일들이다.

지난 3월 중순, 우연한 기회에 백령도에서 ‘위로와 사랑을 나누는 평화음악회’를 개최한다는 이야기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그 옛날 군복무를 한 백령도를 아내와 함께 가기로 결심했다.

이틀간의 휴가를 내고 아내와 함께 새벽 일찍 백령도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연안부두에서 약 4시간 배를 타고 백령도에 도착했다. 원래는 대청도를 경유하는 노선이었으나 일기가 불순하여 백령도로 바로 출발하였다. 백령도에 도착하여서는 촉박한 일정 때문에 버스안에서 김밥을 먹으며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버스 운전기사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의하면 백령도에는 인구 일만 일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주민이 5천명, 군인 5천명, 기타 공사 관련 등으로 1천여 명이 상주하고 있다고 하였다. 백령중고교가 있는데 학생들의 보충수업은 해병대 장교 부인들이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대피소를 추가로 건설하여 5백명 이상이 대피할 수 있는데 중간 중간에 소규모 대피소가 있고 K-9 자주포와 진지도 구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탱크 등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바로 최전방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곧이어 천안함 위령탑에 도착했다. 위령탑은 천안함이 폭침된 곳에서 가까운 산봉우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옛날 내가 보초를 서던 초소 부근이었다. 북녘을 응시하며 보초를 서던 그 초병시절이 벌써 37년이나 지났으니…….

혹시라도 밤에 북측 인민군들이 넘어 올까봐 정신을 바싹 차리고 밤새도록 근무를 서던 곳을 지금은 위령탑이 건립되어 있어, 아내와 함께 46용사 위령탑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하였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너무 먼 것 같지만 이들의 죽음은 영원히 우리 민족의 마음에 살아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충혼탑은 주탑(8.7m)과 보조탑이 있는데 주탑 가운데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었다. 그 안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는 이유는 365일 서해바다를 항상 밝힘으로써 NLL(북방한계선)을 감시하고 죽어서도 서해를 사수하겠다는 46용사들의 정신이라고 입구에 기록되어 있다.

유가족들이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들어와 천안함 폭침 4주기 행사를 하고 갔다고 한다. 유족들이 바다를 보고 흐느끼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도 자식을 키우는 아비의 한 사람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먼 수평선 너머로 응시하는 나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저녁에는 해병 여단의 흑룡극장에서 개최하는 위로음악회에 참석하였다.

이곳은 군복무 하던 시절, 장병들을 위한 위문공연단이 오면 초소근무를 마치고 위문공연을 관람하던 곳이 아니던가?

바니걸스의 위문공연을 본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천안함 46용사의 추모음학회에 참석하다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게 된다.

당시 공연 중에 바니걸스가 여단장님(고 이화출장군)을 지목하여 노래를 함께 할 것을 요구하여 여단장께서 단상에 올라가 ‘나가자 해병대’가를 부르시던 모습이 스쳐지나가면서 새삼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14개월 만에 첫 휴가를 나와 부산으로 가는 내내 고향과 가족의 소중함이 내 가슴 안에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 먼 거리를 가는 동안 마음이 들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초병생활만 하던 그 당시의 나에게 고향이, 부모님이 계시는 집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이번 기회에 백령도를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연초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명성교회 시무하시는 김삼환 목사님이 ‘우리 모두 앞으로 나아갑시다’란 제목으로 설교하신 말씀 중에서 정신이 무너지면 모든 것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고 하시면서 세계를 이끌어갈 민족은 마음과 정신적 자산을 귀히 여기고 관리하라고 강조하시던 말씀이 뇌리에 되새겨진다.

이솝우화의 한 구절도 생각난다.

햇님과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게 하는 시합을 하였는데 강한 바람은 옷을 더 감싸게 만들었으나 햇님은 따스하게 해서 스스로 옷을 벗게 하였다고 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 잘 모르지만 내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소홀히 하지 않고 나와 이웃을 귀히 여기며 사는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기 위하여는 조금 더 자신을 낮추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따듯한 시선을 돌려야하지 않을까 싶다.

천암함 피격 4주년을 맞아 백령도를 아내와 함께 다녀오면서 새삼 안보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특히 충혼탑 안의 꺼지지 않는 불꽃은 나와 우리 가족은 물론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오르게 하는 것이 46용사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다.

 

천안함 피격사건이란?

2010.3.26(금) 21:22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경계임무를 수행 중이던 해군 제2함대 소속 천안함(pcc-722)이 북한 잠수정의 기습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여 승조원 104명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된 사건

[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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